2012년 2월 20일.
'참 난 행복합니다. 행복한 하루입니다.' 무슨 유행가 가사냐고요? 그렇습니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어야지요.
'밤엔 잠 좀 자자, 합의사항 이행하라'고 싸우다 모진 탄압을 받은 유성기업 노동자들. 충남지노위에서 부당해고로 판정이 났습니다. 부당노동행위로 인정이 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특히 부당노동행위, 사측이 한 행위가 전반적으로 잘못이란 결론은 잘 내려지지 않거든요. 당연한 일이 당연한 일로 판결나지 않는 세월을 살다 보니 그냥 눈물이 다 날 정도입니다. 차암, 나.
'충남민중의 힘' 추진위에서 오는 29일 저녁에 충남의 시군 전역에서 한미FTA 폐기 공동행동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부족한 사회자 때문에 참여단체에 대해 잠깐 왈가왈부했지만 모두 흔쾌히 투.의 전선에 나서자고 결의했습니다. 당연한 일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시군마다 편차가 커, 어떤 시군은 몇 명도 모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번 해보자'는 결정은 커다란 진전입니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하는 풍토, 바로 우리가 이기는 길로 가는 것이죠.
누군가 밤의 활동이라 했습니다. 낮에 사무실이나 현장에서 일한 후 밤에 술 한잔 하면서 뒷담화도 하고 잘 하잔 결의를 다지기도 하는 일을 일컫는 말입니다. 부정적인 얘기도 있지만 솔직한 얘기를 하다 보면 모두 비슷한 마음이란 걸 알게 마련입니다. 서로가 조금씩 부족한단 걸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을 뿐이죠. 당연한 얘기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정당성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당연함을 인정하고 대화를 나누면 당연하게도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하게 되죠. 너무 뻔한 얘기지만 저도 잘 안되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낮 근무 8시간, 밤 근무도 한 8시간 넘게 했는데 모두가 통하더라구요.
진정 부족한 제게 오늘 하루는 그야말로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들.
2012년 2월 21일
‘귀농하는 사람들이 세 가지를 잘 하면 농촌에 잘 적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식 자랑하지 마라. 돈 자랑하지 마라. 이장, 면사무소 등 관 계통과 다투지 마라. 근데 이게 잘 안 돼요.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라고 내려오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게 배우고 살 만한 사람들이 자식들 다 키우고 시골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시골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인 분들도 많고 그러니, 잘 모른다, 못 배웠다 생각하는 거죠. 시골은 정으로 살고 양보도 하고 그러는데 도시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이성적이랄까, 돈으로 따지기도 하고 민원도 까다롭고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 번 겪으면 사이가 벌어지는 거죠.’
민주노총 청양군위원회를 만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것저것 생각하다 나온 귀농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 비록 우리 노동조합 수가 적어도 노동자, 농민 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를 대변하며 발전방향도 고민해보자는 취지는 공감했다. 청양 같은 청정지역에서도 자체로 먹는 물을 해결하지 못하고 보령댐 물을 이용하는데, 이런 상수도마저 수자원공사에 위탁하려는 한심한 일에 분노하기도 했다. 공무원노조 청양군지부장의 열정과 추진력에 많이 고무되었다.
부여는 내려갈 때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조직이 있었다. 부여민주단체연합으로 활동을 이어오다 약간 뜸한 상태이긴 했지만 곧바로 복원하고 민주노총 소속 노조를 작은 단위까지도 권유해서 함께하기로 했다. 노조의 이름으로 대형 현수막을 군청건물에 내걸 정도의 활동력이 있는 공무원노조 부여군지부가 핵심이다. 정길채 신임 지부장의 풍모는 부여군 서민과 민중을 책임지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논산은 작년 말까지 농민회와 함께 여러 차례 ‘한미FTA 폐기 촛불 집회’를 했다고. 전교조나 공무원노조, 사회보험노조, 현차 판매, 건설기계 등 논산 단위들의 적극적인 참여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건설기계지부 논산지회장은 유성기업투쟁 연대 건으로 구속된 상태였지만 사무장이 그 공백을 열심히 메우고 있었다.
아침에 대전으로 내려가 충남경찰청장과 면담을 갖고 논산, 부여, 청양을 들러 저녁 9시경 ‘작은책 충남글쓰기 모임’ 뒤풀이에 참여했다. 회장이 바뀌니 제출되는 생활글이 부쩍 늘었다고 좋아했다. 더 좋은 소식은 아산 참요양병원에서 해고된 간병사 8명 모두 3월1일 자로 복직하기로 했다는 소식. 나이든 여성노동자들이 두 달 가까이 한겨울 찬바람을 견디며 싸우는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너무 잘 되었다. 너무나 잘 되었다.
2012년 2월 22일
바람이 찬기운을 품지 않은 날 오전.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안마당은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한데 모여 훈훈했다. 작년 6월 22일 유성기업투쟁 건으로 구속되었던 노동자중 3명이 집행유예로 나왔다. 얼마 전에 보석으로 나온 한 분도 집행유예를 받았다.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별로 하는 일 없이 편하게 있었는데, 각종 투쟁을 하면서도 면회까지 와 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3개월 이상 감옥에 있으면서 힘들었을 텐데도 오히려 밖에 있었던 사람들이 고생했다고 위로하다니. 동지의 마음이란 이런 것인가. 가족의 눈물과 생계의 타격을 감내하고 속으로 삭인 사연들이 많았을 텐데. 모두 웃고 박수치며 미안했던 마음을 씻어냈다. 칠순이 넘은 구속되었던 동지 아버님에게도 ‘여러 가지로 죄송하다’ 말씀드렸더니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라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민초는 이렇게 모진 세월을 살아내며 세상의 주인으로 일어나는구나.
오후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기총회에 참석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있는 성문밖교회. 입구 새김돌에 너무나 익숙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억눌린 자들에게 자유를’, 저절로 ‘혀 짤린 하나님’이란 노래 대목이 흥얼거려졌다. 87년 공장취업 전에 몇 번의 교육을 받았던 곳. 어쩌면 오늘 총회는 성문밖교회였기에 꼭 오려고 했는지도 몰랐다. 누군가는 ‘이십년이 훨씬 지났어도 그대로인 저 소박한 통나무 십자가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했다.
사업계획의 핵심은 ‘2012년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원년으로!’ 여야 가릴 것 없이 비정규직 문제를 공약으로 내거는 총선과 대선이 함께 있는 해.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진전을 이루자는 취지였다. 회비를 내지 못한 실행이사 숫자에 가슴이 뜨끔해서 돌아오는 내내 수입과 지출을 헤아리고 헤아렸다.
비정규센터 총회가 끝나기도 전에 출발했으나 구속동지 출소 환영식에 아주 늦게 참석했다. 3년 실형을 받은 동지 아내가 생일이라서 케잌을 준비했는가 본데, 아주 늦은 시간까지 건설노조 회의 땜에 도착하지 못해 모두 아쉬워했다.
날자가 바뀌는 시간이 넘어 사무실 소파에 눕다. ‘본부장이 힘을 좀 써서 들어간 사람들 빨리 좀 빼내주시오’란 말이 맴돈다. 온풍기를 틀지 않아도 포근하다. 올 것은 오듯이 봄은 오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도 오고야 말 것이다.
2012년 2월 23일
‘취업하기 힘들어요. 노조활동이 활발했던 사업장 출신은 괜찮은 직장을 들어가기 어려워요. 이력서에 쓰면 일단 배제된다고 봐야 하고 안 쓰고 들어갔더라도 나중에 고용보험 등 4대보험 가입내역을 알게 되면 문제가 된다고 봐야죠. 신원조회를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건 잘 모르겠어요. 얼마 전에 들은 얘기라서 확실하진 않지만 삼성쪽에선 면접 때 개인 공인인증서 유에스비를 가져오게 한데요. 공인인증서로 인터넷을 통해서 쫙 훑어본다는 거예요. 그럼 웬만한 것은 신상이 다 털린다고 봐야죠.‘
어느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위장폐업투쟁을 오랫동안 했던 노동자를 만났다. 가전제품 설치, 유지 업무를 하는 기사란다. 기본급도 없이 일거리가 들어오는 대로 출장 수만큼 쥐꼬리만한 대가를 받는다고. 고객과 연결이 두세 번 취소되면 기름값은 고사하고 손해만 보기 때문에 주변을 잘 묶어 다녀야 한단다. 맥주 한잔마저 고사하며 그는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에 아파트 안으로 일하러 갔다.
오후에 대전교도소에서 3년형을 받고 상고중인 신기철지부장을 면회했다. 충주로 이감될 거란 얘기를 듣고 누군가 ‘거기는 시설이 좋다던데’라 하자 ‘창이 높아 밖이 안보여 갑갑하고 물이 너무 차갑다’란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특사와 가석방의 조건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을 경험삼아 다음에는 더 치밀하게 대응하라’는 얘기를 듣다 눈물이 날 뻔 했다.
어떤 날은 한두 개의 일정으로 하루가 간다. 각자 맡은 일로 왔다갔다 하다보면 점검을 서로 못할 때도 있다. 결정이나 계획을 한 달 전에 했어도 막상 집행할 즈음에는 준비부족일 경우가 많다. 각 구성원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단성이 발휘되지 않으면 한계가 명확한 듯하다.
집단이 나아갈 장단기 방향을 구성원들이 잘 알아야 한다. 서로의 위치와 처지를 잘 파악하고 일상적인 공유체계를 통해 집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전체적인 시각, 주체적인 대화와 점검, 탄력적인 상황대처가 필요하다.
2012년 2월 24일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가슴이 터질 것 같더라고요. 대의원이라 조합원들에게 문자를 넣고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가 오고 문자가 왔어요. 야간 출근해서도 이 사람 저 사람과 같은 얘기를 계속했어요.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일단 이겼지만 우리가 더 치고 나가야 정규직이 될 수 있다. 이런 식의 대화죠. 다른 때는 밤새 일하면 힘들어 녹초가 되는데, 오늘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재작년 파업 때 라인을 잡았던 일, 관리자 구사대에게 두드려 맞은 일, 앞으로 현대차 자본이 어떻게 나올까, 일하면서 이러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침이 금방 와버렸어요. 하지만 또 과제가 남았다고 봐요. 현대차가, 정몽구가 우리 모두를 바로 정규직화하지 않을 거잖아요. 무슨 꼼수를 부릴지 모르니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더 조직하고 더 당당하게 싸워나갑시다.’
오늘 아침 현대차 아산공장 앞 출근투쟁은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흥분되어 있었다.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며 사내하청에서 2년 이상 일한 노동자는 정규직이란 내용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어제 받았기 때문. 8년째 해고자로 투쟁하고 있는 사회자도 뉴스를 본 아버지에게 전화가 온 얘기를 하며 감회에 젖었다. 한겨레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사진이 실린 동지는 어제 대법원 앞에서 있었던 풍경을 그 사진보다 더 밝은 함박웃음으로 얘기했다. 집회하는 인도에 저들이 수북이 쌓아놓았던 눈도 모두 녹았고 바람은 더 이상 귀를 시렵게 하지 않았다. 8천 현대차 비정규직과 30여만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아침이다.
‘2003년 사내하청노조를 만든 이후 9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까. 수많은 노동자가 해고되었습니다. 얻어 터지고 짓밟히고 구속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재판도 5년이 넘었고 2010년 7월 대법원 파기환송 후에도 1년 5개월이 넘어서 확정되었습니다. 우리의 피어린 투쟁이 없었다면 법원은 결코 제대로 판결하지 않았을 겁니다. 현대차는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 한명에 대한 판결이라고 일부만 시늉을 내고 넘어가려할지 모릅니다. 정의는 법조문에서 저절로 나오는 게 아니고 우리의 투쟁으로 실현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열린 길을 두려움 없이 달려갑시다.’
오후엔 당진 JW지회(중외제약, 생명공학)투쟁에 함께했다. 공장 앞에서 교대제 출퇴근 시간에 맞춰 집회를 한다. ‘아파서 전화했는데 대뜸 왜 이제 했냐고 그래요. 아니 시간을 정해놓고 아픕니까. 기계도 고장 나면 바로 고치는데, 노동자는 기계만도 못하게 취급합니다.’ ‘앞에 나오니 떨리는데요, 그동안 받은 부당한 대우에 내 가슴에서 솟구치는 분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잔업도 한 달에 52시간까지만 인정해주고 있어요. 근로기준법에 있는 것도 안 해주니 단체협약이 진전이 하나도 없어요. 유인물만 돌려도 징계를 해요. 사장은 교섭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이 4시간 파업을 했더니 부분 직장폐쇄를 해서 지금 밖에 있어요.’
‘국민의 건강 우리가 지킵니다’는 현수막이 걸린 담장 너머 넓은 잔디밭, 번듯한 공장건물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팔구십 년대에 살고 있었다.
저녁엔 충남건설지부 토목건축분과 예산홍성지회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했다. 서울에서 충청도 각지에서 많은 동지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다. ‘떠돌이 노가다 인생에서 건설노동자로 인정받고 퇴직금, 고용보험을 쟁취한 건설노조입니다. 충남도청이 들어서는 내포신도시를 건설하는 현장에서 이제 지역민을 고용하라는 외침으로 지회활동을 시작합니다. 이제 떠돌이 생활을 마감하고 그 지역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로 살아갑시다.’
2012년 2월 25일
‘프레스 작업을 하다가 7개월 전에 사고를 당했어요. 오른손이 작살이 나서 몇 달간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중지와 약지, 새끼손가락을 쓸 수가 없어요. 검지는 구부러지기는 하지만 힘을 줄 수가 없어요. 얼마 전에 산업재해 후유장해 10급 판정을 받아 천사백만 원 정도 받았지요. 몇 개월 더 물리치료를 받는 조건으로. 회사는 나와서 기계 앞에만 서 있으라고 해요. 말이 그렇지 한 사람이 기계 하나씩 보는데 손이 이래가지고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요. 회사한테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동네에 있는 작은 공장을 다니는 동네 사람의 상담. 한마디로 손가락 세 개 값이 얼마인가? 마흔일곱의 사내는 보통 하루 한 시간 잔업을 하고 한 달에 백오십만 원 월급을 받았다고. 통장을 보니 이것저것 떼고 매월 백삼십만 원 내외로 찍혀있다. 대략 이천만 원 정도면 민사보상을 합의할 수 있을 거라 얘기하며 울컥했다. 최저임금 수준인 그의 처지와 노동조합운동을 해온 내 책임의식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손가락 값도 월급에 따라 이렇게 차별을 받는구나. 산재보상금 기준은 세월이 가도 왜 마냥 제자리인가. 치료를 모두 마쳐야 장해 판정을 하고 회사에 나가는 게 원칙인데 왜 여전히 안 지켜지는가. 근로복지공단은 누적흑자가 11조 원이라는데.
더 자세한 것은 노무사에게 물어봐서 월요일 날 연락주마고 일어서자 허리굽은 어머니는 아침을 먹고 가라며 여러 번 권했다. 그이처럼 혼자 사는 형의 배웅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 공단에서 한 달에 잘려나가는 손가락만 한 가마는 될 거다.’며 콜라잔으로 소주를 들이키던 80년대 말 동료노동자의 스산한 웃음이 떠올랐다.
해가 저물어갈 쯤 청계광장에서 열린 2012승리 범국민대회. 찬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광장은 반이 넘어 찼다. 연사도 많았지만 서로 겹치는 부분은 적었다. 한미FTA폐기를 중심으로 ktx 민영화 반대, 4대강 복원,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조중동 방송 반대, 반값등록금 실현 등.
600만 자영업자를 대변한다는 단체에서 오신 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명박은 정권을 잡을 때도 국밥을 먹더니 엊그제도 시장에 가서 또 국밥을 먹었답니다. 그 뉴스를 보면서 그냥 그 국밥에 머리를 쳐박아버리고 싶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죽이는 한미FTA를 폐기하기 위해 총선승리, 정권교체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정치인부터 모든 걸 바치세요.’
무대천 위 구호에 작은 구멍이 두 개 뚫린 사연. ‘MB,( ),( ) vs 99%의 싸움이 시작된다’에서 ( )는 무엇일까. 사전대회 사회자는 찢어낸 ( )을 보여주었다. 이를 거명하며 심판하자는 등의 연설이나 구호를 하면 선거법 위반이란다. 선거철이면 말을 더 많이 푸는 게 민주주의일진데 이놈의 나라는 선거를 이유로 입마저 틀어막는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 )에 나와 있지 않을까. (새누리당) (박근혜).
2012년 2월 26일
일 년여 만에 후원하는 단체들 내역을 꼼꼼히 살펴보다. 처음엔 한국비정규센터 후원과 쌍용차 해고노동자 지원 자동이체만 할 생각이었다. 보다 보니 어느 단체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하나하나 점검하게 되었다. 자동인출은 대게 표시가 되는데 자동이체 되는 곳을 제대로 써 놓지 않았기 때문인 듯. 언젠가부터 자동인출 방식보다는 자동이체를 주로 선택하기 시작했다. 자동인출을 해 놓으니 끊을 때 번거로울 뿐 아니라 이유를 밝혀야 하는 난감함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짚어가니 그 단체나 사람과의 인연이 떠오르기 마련. 끊거나 줄일 때는 미안했고 새로 추가할 때는 뿌듯했다. 그래도 작년에 비해 몇 만원 늘릴 수 있어 좋았다. 종합하니 지금 받는 돈의 14%, 21만원을 14개 단체나 사람에게 보내게 되었다. 물론 개별 조합원이라 조합비까지 포함했다.
‘옛날에는 대보름이 지나면 거름을 내기 시작하고 농사준비를 했지. 우수 경칩이 지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하지 않았나. 경칩이 한 일주일 남았는가? 그 때가 지나면 밭도 갈고 농사일을 시작하는 거지.’
모처럼 동네 형님들과 한잔하다. 두 분 나이는 예순다섯 살, 아저씨가 맞을 듯하지만 형님이라 부르라 해서 그렇게 지낸 지 일 년 반이 넘었다. 일이 주에 한잔씩 하는 사이. 두 분 다 텃밭 정도 짓는 수준이지만 만나면 농사에 대해 얘기하곤 한다.
‘밭에 묻어 놓은 무가 다 얼어버렸어요. 건너편 집 아줌마가 무를 좀 달라고 해서 아까 밭에 갔는데, 파보니 성한 게 몇 개 없더라고요. 딸내미도 준다고 마대 푸대를 세 개나 가지고 간 그 아줌마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아까워 죽겠어요, 세 접도 넘을 텐데.’
내 하소연에 여러 방안을 제시했다. 그냥 대충 묻으면 어는 수가 많다고. 원래 무를 묻을 때는 바닥에 왕겨를 뿌리고 볏짚을 덮는 거라고. 헛간에 보온재로 덮어놓거나 큰 통에 담아 방안에 두라는 따위들. 없으면 갖다 먹으라는 얘기도 덧붙이며 형님들은 저녁을 마다하고 집에 가셨다.






























